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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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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2020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낭송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8편>


나의 계시가 절정에 이를 때, 그리고 나의 심판이 막바지에 다다를 때, 즉 모든 백성이 드러나고 온전케 될 때, 나는 우주 세계의 곳곳을 누비며 나의 뜻에 맞고 내가 쓰기에 합당한 사람을 시시각각 찾는다. 누가 일어나 나와 협력할 수 있느냐? 나에 대한 사람의 사랑은 진실로 너무 작고, 나에 대한 믿음 또한 초라할 정도로 보잘것없다. 내가 직접 사람의 연약한 부분을 겨냥해 말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온 세상일을 모두 아는 듯 허풍을 떨고 호언장담을 하며 공리공론을 늘어놓을 것이다. 과거에 내 앞에서 ‘충성’을 다한 자, 오늘날 내 앞에서 ‘굳게 선’ 자, 그들 중 어느 누가 감히 큰소리칠 수 있겠느냐? 어느 누가 자신의 앞날을 위해 ‘몰래 기뻐하지’ 않겠느냐? 내가 직접 폭로하지 않아도 사람은 이미 몸 둘 바를 몰라 하고 몹시 부끄러워하고 있는데, 내가 방식을 바꿔 말한다면 어떠하겠느냐? 그렇게 되면 사람은 더욱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가 구제 불능이라고 여길 것이며, 모두가 ‘소극적’에 단단히 결박될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나라의 예포가 본격적으로 울린다. 즉, 사람이 말하는 ‘일곱 배로 강화된 영이 역사하기 시작할 때’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나라의 생활이 땅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즉 내가 신성으로 직접 일할 때(머리의 ‘가공’을 거치지 않는 것을 말함), 모든 사람은 정신없이 바빠진다. 마치 다시 소생한 듯, 꿈에서 막 깨어난 듯하다. 잠에서 깨어났는데 그런 형편에 처했으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예전에 나는 교회 건축에 대해 많은 말을 했고 또한 많은 비밀을 밝혔으나, 절정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끝나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나라 건축은 그와 다르다. 영계의 교전이 막바지에 이를 때, 나는 비로소 땅에서 새롭게 시작한다. 즉, 사람이 모두 떠나려고 할 때, 나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또 새로운 사역을 일으킨다. 하나님나라 건축과 교회 건축은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교회 건축은 신성의 지배를 받는 인성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사람의 옛 성품을 다루고, 사람의 추태를 드러내며, 사람의 본질을 폭로해 그 기초에서 자신을 알게 함으로써 진심으로 탄복하고 인정하게 하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나라 건축은 신성으로 직접 일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내 말을 아는 것을 기초로 나의 소유와 어떠함을 알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육신에 거하는 나를 알게 함으로써 전 인류가 막연한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을 끝내고, 사람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하늘의 하나님’의 지위를 끝내는 것이다. 즉, 사람으로 하여금 나의 육신을 통해 나행사를 알게 함으로써 내가 땅에 거하는 시대를 끝내는 것이다.

확장 열람 : 하나님 나라

하나님나라 건축은 직접 영계를 향한다. 즉, 영계의 교전 상황이 곧바로 백성들 가운데서 드러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모든 사람은 교회뿐만 아니라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서도 계속 싸우고 있다. 비록 육체를 가지고 살고 있지만, 직접 영계가 드러나고 영계의 생활을 접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나를 위해 충성하기 시작할 때, 다음 부분 사역을 잘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을 전부 바쳐야 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날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나는 없던 일로 할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나라에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나의 계획에서 시종일관 내 뒤를 따르고 있다. 사탄은 나의 지혜의 부각물로서 내 원래 계획을 교란하기 위해 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사탄의 간계에 굴복할 수 있겠느냐? 하늘과 땅 가운데의 어느 누가 나를 위해 힘쓰는 존재가 되지 않겠느냐? 설마 사탄의 간계라고 예외겠느냐? 이것이 바로 내 지혜의 교점이고, 내 행사의 기묘한 점이며, 나의 전체 경륜의 실행 원칙이다. 하나님나라 건축 시대에도 나는 사탄의 간계를 회피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할 것이다. 나는 우주 만물 가운데서 사탄의 모든 행위를 골라 나의 부각물이 되게 하였다. 이것이 나의 지혜가 아니냐? 바로 내 사역의 기묘한 점이 아니냐? 하나님나라시대에 들어갈 때, 하늘 위아래의 만물이 다 크게 변하고 경축하며 환희에 차 있는데, 너희도 그러지 않겠느냐? 누구의 마음인들 꿀처럼 달지 않겠느냐? 누구의 마음인들 기쁨이 넘치지 않겠느냐? 누구의 몸인들 흥겨워 춤추지 않겠느냐? 누구의 입인들 찬미하지 않겠느냐?

지금까지 내가 한 말에서 내 말의 목적과 근원을 알겠느냐? 내가 말하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은 내가 이것저것 끝없이 이야기한다고 여겨 그 근원을 찾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이 세심하게 묵상해 보면 내 말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아라. 어느 말이 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더냐? 어느 말이 네 생명의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더냐? 또 어느 말이 영계의 실제 상황을 소개한 것이 아니더냐? 많은 사람들이 나의 말이 밑도 끝도 없으며, 설명도 해석도 부족하다고 여긴다. 설마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나의 말이 그렇게 추상적이더냐? 너희는 나의 말에 진심으로 순종하였느냐? 나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느냐? 나의 말을 장난감으로 여기지는 않았느냐? 나의 말을 자신의 옷으로 삼아 너의 추태를 가리지는 않았느냐? 이 아득한 세상에서 어느 누가 직접 나의 검열을 받아들였느냐? 어느 누가 직접 내 영의 말을 들었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둠 속에서 모색하며 찾고 있었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환난 속에서 간구하고 있었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앙망하고 있었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탄에게 묶여 있었느냐? 하지만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갈 곳을 몰라 하고 있었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행복 속에서 나를 배반했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배은망덕했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탄의 간계 때문에 충성하고 있었느냐? 너희들 가운데 누가 욥이냐? 누가 베드로냐? 내가 왜 여러 번 욥을 언급하고 베드로를 언급했겠느냐? 너희에 대한 나의 희망을 너희는 느낀 적이 있었느냐? 너희는 이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확장 열람 : 베드로의 인생에 관하여

베드로는 내 앞에서 오랜 세월 충성을 다하면서도 입에 불평을 담은 적이 없었고, 원망의 마음을 품은 적도 없었다. 욥도 그에게 미치지 못했고, 역대의 성도들 또한 베드로보다 훨씬 뒤떨어졌다. 베드로는 나를 알기를 추구했을 뿐만 아니라 사탄이 간계를 부릴 때에도 나를 알려고 했다. 그리하여 그의 오랜 섬김이 다 나의 뜻에 부합하였고, 그로 인해 사탄에게 이용당한 적이 없었다. 그는 욥의 믿음을 본받았으나 욥의 단점도 파악하였다. 욥은 믿음이 컸지만, 영계의 일에서는 인식이 부족하여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말을 많이 했다. 이는 그의 인식이 얕아 완벽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언제나 영적인 느낌을 찾는 것과 영계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살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탄의 간계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역대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베드로의 체험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듯이, 사람이 나를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영적으로 세심하게 살피는 것을 중요시해야 한다. 너에게 나를 위해 겉으로 얼마를 ‘헌신’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모두 부차적인 일이다. 네가 나를 알지 못한다면, 네가 말하는 믿음과 사랑, 충성심은 전부 환상이고 물거품이다. 너는 분명 내 앞에서 큰소리치지만,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또다시 사탄의 올무에 빠지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침륜의 자식이 될 것이고 멸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말에 냉담하다면 의심할 것도 없이 너는 나를 대적하는 자이다. 이것이 사실이다. 네가 영계의 문을 통해 그 안에서 나의 형벌을 받는 각양각색의 영들을 보는 것도 좋겠다. 어느 누가 나의 말에 냉담하지 않고, 소극적이지 않았으며, 또 나의 말을 거부하지 않았더냐? 어느 누가 나의 말을 조소하고 비아냥거리지 않았더냐? 어느 누가 나의 말에서 꼬투리를 잡지 않았더냐? 어느 누가 나의 말을 자신의 ‘호신용 무기’로 삼아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았더냐? 그들은 나의 말에서 나를 알고자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말을 ‘이용’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을 뿐이다. 이것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대적한 것이 아니더냐? 내 말은 누구냐? 내 영은 누구냐? 나는 너희에게 이런 질문을 몇 번이나 했다. 그런데 너희는 더 높은 차원에서 분명하게 깨달은 적이 있더냐? 진실한 체험이 있었느냐? 다시 한번 일깨워 주겠다. 나의 말을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실행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내 형벌의 대상이 될 것이며, 사탄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1992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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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낭송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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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2020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낭송 <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사람은 수천 년의 패괴를 겪고 나서 모두 무감각하고 우둔해졌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마가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한 역사(歷史)는 모두 ‘사기(史記)’에 기록되었고, 심지어 사람의 패역한 행위는 사람 스스로도 다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패괴되었고, 이미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갈 곳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을 보고도 배반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도 배반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본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한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의 이성이 원래의 기능을 잃었고, 사람의 양심도 원래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한다. 내 눈에 보인 사람은 모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자 독사다. 사람이 내 앞에서 얼마나 가련한 척을 하든 나는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흑과 백의 차이를 전혀 모르고, 진리와 비진리의 차이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성이 이렇게 무감각함에도 여전히 복을 받고 싶어 하고, 이렇게 비열한 인성을 가지고도 여전히 왕이 되어 권력을 잡고 싶어 한다. 이런 이성을 가지고 누구에게 왕 노릇을 하겠느냐? 이러한 인성으로 어떻게 보좌에 오를 수 있겠느냐? 정말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구나! 모두 제 주제도 모르는 소인배로구나! 복을 받고 싶어 하는 너희들에게 권하는데, 우선 거울을 찾아 자신의 추한 몰골을 비춰 보아라. 네가 왕이 될 재목이냐? 너는 복받을 만한 오관을 가졌느냐? 성품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진리를 조금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아름다운 앞날을 생각하다니 참으로 망상이 아니고 무엇이냐!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에 물들었고,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뒤처진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일말의 가치도 없는 삶, 저속한 풍속과 생활, 이러한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심하게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심하게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사람의 성품은 나날이 더 악랄해져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거나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기꺼이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반면에 사람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마음껏 쾌락을 찾아 즐기고, 진흙탕에서 마음껏 자신의 육체를 패괴시키고 있다.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설령 진리를 듣더라도 실천할 마음이 없고, 하나님이 이미 나타난 것을 보아도 찾으려는 마음이 없다. 이렇게 타락한 인류에게 구원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겠느냐? 이렇게 부패한 인류가 어떻게 빛 속에서 살 수 있겠느냐?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려면 사람의 본질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변화되어야 한다. 사람의 사상, 본성, 정신 면모에서부터 변화되어야 하고,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의 성품이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다. 사람의 패괴된 성품의 근원은 사람이 이미 사탄에게 해를 입고 사탄에게 짓밟혀 사람의 사상, 도덕, 식견, 이성이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파괴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의 근본적인 것들이 이미 모두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하나님이 만든 원래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려면 우선 사람의 사상, 식견, 이성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진리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가장 심하게 패괴된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인지 더더욱 모른다. 사람은 심하게 패괴될수록 하나님의 존재를 더 알지 못하고, 이성과 식견이 더 부족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본적 원인은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사람은 양심이 무감각하고 도덕이 부패하고 사상이 진부하고 정신 면모가 뒤처지게 된 것이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패괴되기 전에는 본래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바로 순종했으며, 이성과 양심이 건전하고, 인성이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된 이후로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이성과 양심, 인성이 무감각해지고 전부 사탄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사랑을 모두 잃게 된 것이다. 사람의 이성이 정상에서 벗어나고, 사람의 성품도 짐승처럼 변해 하나님에 대한 패역이 점점 많아지고 심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아직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무턱대고 대적하고 거역하기만 한다. 사람이 드러내는 성품은 곧 사람의 이성, 식견, 양심의 발현이다. 사람은 이성과 식견이 건전하지 못하고, 양심이 극도로 무감각해졌기 때문에 사람의 성품 또한 하나님을 거역하는 성품이 된 것이다. 사람의 이성과 식견을 바꾸지 못하면 성품 변화는 물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는 것도 말할 나위가 못 된다. 사람은 이성이 건전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정상적인 이성이란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스러우며,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하나님에 대해 절대적이고 양심적이며, 하나님에 대해 일편단심이고,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이성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기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사라졌으며,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게 되었다. 양심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판단할 뿐만 아니라, 뒤에서 하나님을 욕하고, 하나님인 줄 뻔히 알면서도 뒤에서 판단하며, 순종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이 계속 하나님께 달라고 하고 요구하기만 한다. 이처럼 이성이 비정상적인 사람은 자신의 비열한 행위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패역한 행위를 통회하지도 못한다. 자신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이성이 조금은 회복된 사람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면서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이성이 더 건전하지 못하다.

사람의 패괴 성품이 드러나는 근본 원인은 사람의 무감각한 양심, 악독한 본성과 건전하지 못한 이성에 있다. 사람의 양심과 이성이 정상으로 회복된다면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 적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의 양심이 줄곧 무감각한 상태에 있고, 사람의 이성이 한 번도 건전했던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무감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말세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문전 박대 하며, 하나님의 육신을 정죄하고, 또 하나님의 육신이 비천하다고 여긴다. 사람에게 인간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이렇게 잔혹하게 대할 수 없고,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이렇게 악독하게 대할 수 없으며, 정말로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성육신 하나님께 이같이 ‘감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성육신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좋은 기회를 준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이 온 것을 욕하거나 하나님이 성육신한 사실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어쩌면 부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귀찮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나님이 온 것을 사람이 어떻게 대하든 하나님은 싫은 기색 없이 계속 자신의 사역을 한다. 사람이 그를 조금도 환영하지 않고, 그에게 계속 뭔가를 요구하더라도 말이다. 사람의 성품은 극도로 악독해졌고, 사람의 이성은 극도로 무감각해졌으며, 사람의 양심은 이미 악한 자에게 짓밟혀 원래 가지고 있던 양심은 진작에 사라져버렸다.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인류에게 베풀어 준 이처럼 많은 생명과 은혜에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진리로 인해 하나님을 혐오하고, 진리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하나님에게조차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서 ‘기름을 짜내고’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것보다 수십 배나 많은 이자를 달라고 요구한다. 사람은 이런 양심과 이성을 가졌으면서도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것이 너무 많고 반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푼 것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물 한 그릇을 주고는 우유 두 그릇 값의 금화를 달라고 손을 내밀고, 내가 그의 집에서 하룻밤 묵으면 이보다 몇 배 넘는 숙박비를 요구한다. 너희는 이런 인성과 양심을 갖고도 생명을 얻으려 하느냐? 정말 비열한 소인배들이구나! 사람의 이런 인성과 양심 때문에 성육신 하나님은 기거할 곳 없이 곳곳을 떠돌게 된 것이다. 정말로 양심과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육신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사역을 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설사 그가 아무런 사역을 하지 않더라도 마땅히 그를 경배하고 일편단심으로 그를 섬겨야 한다. 이것은 이성이 건전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사람의 본분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도 조건을 내건다. 그런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인지 사람인지는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조건만을 얘기하거나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만 한다. 너희는 나에게 밥을 지어 주면 품값을 요구하고, 나를 위해 다리품을 팔면 수고비를 요구하며, 나를 위해 사역하면 사역비를 요구하고, 나에게 빨래를 해 주면 세탁비를 요구하며, 교회에 공급하는 일을 하면 몸보신 비용을 요구한다. 말하는 자는 강의료를 요구하고, 책을 배부하는 자는 책 배부 비용을 요구하며, 글을 쓰는 자는 원고료를 요구한다. 심지어 내게 책망받은 사람은 내게 보상금을 요구하고, 집으로 돌려보낸 사람은 명예 훼손 배상금을 요구하며,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혼수비와 청춘을 바친 대가를 요구한다. 또한 닭 잡은 사람, 요리를 만든 사람, 국을 끓인 사람 등 다 그에 따른 수고비를 요구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너희의 고상하고도 위대한 인성이며, 너희의 그 따뜻한 양심에서 비롯된 일이다. 너희의 이성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의 인성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너희가 계속 이렇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너희들 가운데서 사역하지 않을 것이고,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에게 사역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 같은 인면수심의 무리들 때문에 고통받지 않을 것이고, 구원할 여지가 조금도 없는 이런 짐승들을 위해 인내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등을 돌리는 날은 바로 너희가 죽는 날이고, 어둠이 너희에게 임하는 날이며, 광명이 너희를 버리는 날이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나는 너희처럼 짐승보다도 못한 무리에게 큰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일하는 데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너희의 인성과 양심이 이러하니 나는 더 많은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너무 양심이 없고, 나의 마음을 너무 많이 상하게 했으며, 너희의 비열한 행위는 나를 너무 역겹게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성과 양심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을 기회가 없다. 나는 이렇게 흉악하고 잔인한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날이 올 때, 나는 나를 크게 진노하게 했던 이 패역한 자식들에게 영원히 불사름의 불을 쏟을 것이고, 예전에 나를 욕하고 저버린 이 짐승들에게 영원히 징벌을 내릴 것이며, 나와 함께 먹고 함께 지냈지만 나를 믿지 않고 모욕하고 배반한 그 패역한 자식들을 영원히 나의 분노의 불길로 태울 것이다. 나를 분노하게 한 모든 사람을 나의 징벌 속에 내던질 것이고, 나와 동등해지고 싶어 하며 나를 전혀 경배하지 않고 내게 순종한 적이 없는 짐승들에게 나의 모든 분노를 쏟을 것이며, 내 입에서 나온 말의 비밀과 나의 보살핌을 누리고 나에게서 물질적인 누림을 다투었던 짐승들을 나의 채찍으로 칠 것이다. 나는 내 지위를 빼앗으려는 자는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나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다투는 자는 그 누구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지금은 별 탈 없이 평안하고, 점점 더 큰 욕심을 내며 내게 요구하고 있지만, 분노의 날이 오면 더는 내게 요구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 나는 너희가 마음껏 ‘누리게’ 할 것이다. 나는 너희가 입으로 진흙을 씹게 할 것이고, 너희는 영원히 그 처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조만간 이 빚을 너희에게 모두 ‘되갚을’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너희가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비열한 인간들이 정말로 사치스러운 욕망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설 수 있다면 그래도 구원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정말로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은 사람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얻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정이 있어서도, 사람이 얻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아서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사람에게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이가 있더냐? 이성이 건전하고 양심이 예민한 사람 중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이가 있더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섬긴 사람 중에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불사름 당한 이가 있더냐?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한 사람 중에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 집 밖으로 쫓겨난 이가 있더냐? 하나님을 한없이 사랑하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징벌 속에서 살게 된 이가 있더냐?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린 사람 중에 빈털터리가 된 이가 있더냐?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자기 재물을 쓰려고 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위해 자기 일생의 정력을 쓰려고 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하나님이 너무 지나치다고 말하고, 하나님께 사람의 생각에 맞지 않는 점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너희 같은 이런 인성으로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도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다. 너희는 자신이 인류 중의 불량품이라는 사실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인성이 가장 비천하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존칭’이 무엇인지 모른단 말이냐?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너희를 늑대의 아비나 어미, 늑대의 자식이나 손자, 늑대의 후예, 늑대의 민족이라고 한다. 너희는 자기 신분을 알고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하며, 스스로를 상등 인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인류 가운데 가장 악랄한 한 무리의 비인류이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모른단 말이냐? 내가 너희들 가운데서 사역하면서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지 너희는 알고 있느냐? 너희의 이성이 정상을 되찾지 못하고, 너희의 양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너희는 ‘늑대’라는 호칭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고, 저주와 징벌의 날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너희는 출생이 비천하고, 본래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본래 한 무리 굶주린 늑대이고, 한 무더기 잡동사니나 쓰레기다. 내가 너희에게 사역하는 것은 너희처럼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역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계속 이렇게 거역한다면 나는 나의 사역을 그만둘 것이며, 앞으로 다시는 너희에게 사역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나는 내가 좋아하는 다른 무리의 사람들에게 옮겨 가서 사역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영원히 너희를 떠나게 된다. 나는 나와 적이 되는 사람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의 마음에 합하길 원하느냐, 아니면 나와 적이 되길 원하느냐?

확장열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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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낭송 <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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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교회에서 하신 그리스도의 설교





10/07/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실행 3>(발췌문 314)


너희가 지금 깨달은 것은 온전케 되지 않은 역대의 그 누구보다 높다. 시련에 대한 인식이든 또는 믿음에 대한 인식이든 하나님을 믿는 그 누구보다 높다. 너희가 깨달은 것은 모두 환경의 시련을 겪기 전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희의 실제 분량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으며 모든 깨달음이 실천에 앞선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복을 바라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기만을 원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너희가 삶에서 보여 주는 행동은 그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고 불순물도 너무 많다. 많은 이가 평안과 이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익이 없으면 믿지 않고 은혜를 받지 못하면 입을 삐쭉거리니, 너의 말이 어찌 너의 실제 분량을 대표하겠느냐? 아이의 질병, 가족의 입원, 농작물의 수확 감소, 가족의 핍박 등 평소에 벌어지는 피할 수 없는 가정의 변고, 즉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을 너는 감당하지 못한다. 이런 일이 생기면 너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부분 하나님을 원망하곤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너를 속였다고, 하나님의 역사가 너를 조롱했다고 원망한다. 너희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지 않느냐? 이런 일들이 너희 가운데서 드물게 발생한다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온종일 이런 일들에 빠져 살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제대로 믿을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수 있을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너희의 실제 분량은 너무나 작아서 그야말로 병아리만큼도 되지 않는다. 사업이 손해를 봐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도 원망하고, 심지어 집에 있는 병아리가 죽거나 외양간의 소가 병들어도 원망하고, 아들이 장가를 가는데 집에 돈이 없어도 원망한다. 접대하며 본분을 이행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도 원망한다. 너의 뱃속은 원망으로 가득 차 있어 때로는 그것 때문에 예배를 드리지도,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도 않으며, 기약 없이 부정적인 상태로 지낸다. 지금 임한 이런 일들은 너의 미래나 운명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일어났을 일들이다. 그러나 너는 이 일들의 책임을 모두 하나님께 돌리고는 하나님이 너를 도태시켰다고 우긴다. 너의 믿음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 정말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느냐? 오늘날 나를 따르는 너희에게 욥과 같은 시련을 준다면 단 한 명도 굳게 서지 못하고 다 넘어질 것이다. 너희와 욥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이다. 오늘날 내가 너희의 재산 중 반을 빼앗는다면 너희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것이다. 내가 너희의 자녀를 거둬 간다면 길거리에 주저앉아 큰 소리로 욕할 것이고, 얼마 안 되는 네 생계의 길을 막아 버리면 하나님과 결판을 내려고 할 것이다. 애초에 왜 그렇게 많은 말로 엄포를 놓았느냐며 너희는 무슨 일이든 저지를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너희는 참된 깨달음이 없고, 참된 분량 또한 전혀 없다. 그러므로 너희가 받는 시련이 큰 것이다. 아는 것은 지나치게 많은데 진정한 깨달음은 너희가 알고 있는 것의 천 분의 일도 안 되기 때문이다. 너희는 깨닫고 이해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말고, 자신이 얼마나 참되게 실행할 수 있는지, 자신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은 것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실행으로 자신의 의지를 실현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너는 자신의 분량과 실행을 참답게 대해야지, 하나님을 믿는 일에서 어물쩍 넘어가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네가 진리와 생명을 얻을 수 있을지 여부는 결국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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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말씀 묵상 <실행 3>(발췌문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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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의 하나님 말씀 더보기: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발췌문 550)


9/30/2020

매일의 하나님 말씀 <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발췌문 550)

 

오늘날의 사람은 한쪽으로 치우쳐 추구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하려고만 할 뿐 그를 조금도 알지 못한다. 성령의 내적 깨우침과 빛 비춤을 간과하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밑거름으로 삼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체험하다 보면 열의는 곧 사그라진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자 하는 사람은 예전에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 소극적이고, 연약하고, 눈물을 흘리고, 낙심하고, 실망하는 일이 다반사였을지라도 지금은 체험하면 할수록 상태가 좋아질 것이다. 책망과 깨뜨림, 시련과 연단을 겪고 나면 크게 성장하게 되고, 그런 소극적인 상태가 적어지며, 생명 성품에도 변화가 조금 생긴다. 또 연단을 많이 겪게 되면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에는 법칙이 있다. 즉, 취할 만한 부분을 통해 깨우침을 줌으로써 실행의 길을 열어 주고, 모든 부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고, 영이 해방되게 하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데, 이로써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게 한다. 네가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신을 알려고 하며, 진리를 실행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너를 축복해 줄 것이다. 또한, 네가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이 될 때 너를 더 깊이 깨우쳐 스스로를 더 잘 알게끔 하고, 자신을 더욱 뼈저리게 뉘우치며, 자신이 실행해야 할 것을 더 잘 실행하게끔 할 것이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된다. 평소에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의 실행을 중시하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역사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와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 설령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있더라도 양심이나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으로 바로 돌려세울 수 있다. 사람의 성품은 모두 자신의 실제 상태,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을 깨달을 때 변화한다. 자신을 알고자 하는 사람, 자기 속내를 다 털어놓는 사람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깊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모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이자 사람이 얻은 것으로, 사람 자신이 거둔 성과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기틀이 잡히고, 이상(異象)을 갖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육신, 말씀, 사역에 대해 확신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고 말씀하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방해하든, 자신의 주관을 세우고 굳게 서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또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더욱 잘 실행한다. 항상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에 옮기다 보면 하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영원히 증거하겠다는 의지를 다질 수 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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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의 하나님 말씀 <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발췌문 550)

매일의 하나님 말씀 <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발췌문 550)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동방번개


9/0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5편>(발췌문 241)



땅에 있을 때, 나는 사람 마음속의 실제 하나님이고, 하늘에 있을 때, 나는 만물의 주재자이다. 나는 높디높은 산을 넘고 깊디깊은 물을 건너기도 했으며, 표연(飄然)히 사람들 가운데를 거닐기도 했다. 그 누가 감히 공개적으로 ‘실제 하나님 자신’에게 대적할 수 있겠느냐? 그 누가 감히 전능자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그 누가 감히 내가 확실히 하늘에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 또한 그 누가 감히 내가 틀림없이 땅에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그 누구도 내가 거하는 곳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하늘에 있을 때, 나는 초자연적인 하나님 자신이기만 하겠느냐? 땅에 있을 때, 나는 실제 하나님이기만 하겠느냐? 설마 만물을 주재하거나 인간 세상의 고통을 체험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내가 실제 하나님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단 말이냐? 그렇다면 사람은 구제 불능일 정도로 어리석은 것 아니겠느냐? 나는 하늘에 있으면서 땅에도 거하고, 만물 가운데도 만인 가운데도 거하므로 사람은 날마다 나를 접하고 볼 수 있다. 사람에게 나는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또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내게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비밀이 있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 내게 있는 비밀을 더 많이 발견하여 마음속의 ‘괴로운 심정’을 없애고자 나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이 투시경을 사용한다고 한들, 어찌 내게 있는 비밀들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

백성들이 나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나와 함께 영광을 얻을 때, 큰 붉은 용의 소굴은 즉시 파헤쳐지고 진흙은 모조리 제거될 것이다. 또 오랫동안 고여 있던 더러운 물은 모두 내 불길에 말라 더 이상 남지 않게 되고, 그에 따라 큰 붉은 용은 멸망하여 유황불 못에 던져질 것이다. 너희는 정말 큰 붉은 용에게 붙잡혀 가지 않도록 내가 사랑으로 보살펴 주기를 원하느냐? 너희는 정말 그것의 간계를 증오하느냐? 그 누가 나를 위해 굳세게 증거할 수 있겠느냐? 내 이름과 내 영, 그리고 내 전체 경륜을 위해 그 누가 자신의 힘을 바칠 수 있겠느냐? 오늘날은 하나님나라가 인간 세상에 있을 때 내가 친히 인간 세상에 임한 때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가 나를 위해 두려움 없이 전장에 나갈 수 있겠느냐? 하나님나라의 형성을 위해, 나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 위해, 나아가 내 날의 도래를 위해, 만물이 다시 소생하는 때와 번성하는 날을 위해, 사람을 고해에서 구원하기 위해, 내일의 도래를 위해, 그리고 내일의 아름다움과 번영을 위해, 더욱이 훗날의 누림을 위해 모든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 분투하고 있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미 승리했다는 상징 아니더냐? 바로 내가 이미 계획을 완성했다는 표징 아니더냐?

말세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세상의 공허함을 느끼고 살아갈 용기를 잃어 간다.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망 속에서 죽어 가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하다가 실망하는지 모르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탄의 손아귀에 지배당하는지 모른다. 나는 일찍이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붙들어 주었으며, 사람이 광명을 잃었을 때, 그들을 빛이 있는 곳으로 데려와 빛 속에서 나를 알게 하고 행복 속에서 나를 누리게 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모두 나의 빛이 비치자 나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본래 사람이 사랑하고 그리워하게 되는 하나님이기에 사람은 나의 그림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사람은 그 누구도 그것이 영의 작용인지, 아니면 육신의 기능인지 깨닫지 못했다. 이 한 가지만 해도 사람이 한평생 구체적으로 체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를 혐오하지 않았고 오히려 영의 깊은 곳에서 나를 그리워했다. 나의 지혜는 사람의 탄복을 자아내며, 나의 기묘한 행사는 사람의 눈을 호강시켜 준다. 사람은 나의 말을 헤아리지 못하면서도 매우 소중히 여기며, 나의 ‘실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도 달갑게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실제 분량 아니겠느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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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말씀 묵상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5편>(발췌문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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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너는 아느냐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발췌문 133)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은 네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네가 자신의 선택이 옳은지 분명하게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역이 성공할지도 모르겠다면, 너는 어째서 이 평범한 사람이 정말로 너에게 큰 도움이 되는지, 하나님이 정말로 매우 큰 사역을 하였는지 네 운을 시험해 보지 않느냐? 그러나 나는 너에게 알려 줄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 시대의 사람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하는 것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노아 일가족 여덟 식구와 각종 날짐승과 길짐승만 남기고 큰 홍수로 모든 사람을 멸해 버렸다. 하지만 말세에는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는 모든 사람을 남겨 둔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심히 패괴된 시대이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결코 인정하지 않는 패괴된 인류인 것은 똑같지만, 노아 시대의 사람은 하나님이 모두 멸해 버렸다. 하나님을 극도로 상심케 한 지경에 이른 것은 똑같지만 말세의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내하였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냐? 너희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느냐? 너희가 정말 모르겠다면, 내가 알려 주겠다. 하나님이 말세의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푸는 것은 말세의 사람들이 노아 시대의 사람들보다 덜 패괴되었거나 하나님께 회개할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니고, 더욱이 말세의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하나님이 멸하기 아쉬워서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말세에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할 사역이 있고,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친히 이 사역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이 한 무리의 사람들 중 일부를 골라 구원의 대상이자 경륜의 결정체로 삼을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을 데리고 다음 시대로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말하든지, 하나님이 치른 모든 대가는 말세의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예비한 것이다. 너희에게 오늘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이 육신 때문이다. 너희는 하나님이 육신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생존할 기회를 얻었는데, 이 모든 복은 이 평범한 사람으로 인해 얻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만국이 모두 이 평범한 사람에게 경배하고,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순종할 것이다. 그가 가져온 진리와 생명과 길이 온 인류를 구원하였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갈등을 완화하였으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소통시키고, 또 그가 하나님을 위해 더 큰 영광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평범한 사람이 네가 믿고 앙모할 만한 가치가 없단 말이냐? 이런 평범한 육신이 그리스도라고 불릴 자격이 없단 말이냐? 이런 평범한 사람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발현이 될 수 없단 말이냐? 사람에게 재난을 면케 해 준 이러한 사람이 너희가 사랑하고 붙들 만한 가치가 없단 말이냐? 만약 너희가, 그가 입으로 선포한 진리를 저버리고 또 그가 너희들 가운데에 거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너희는 어떤 결말을 맞이하겠느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다 이 평범한 사람을 통해 한다. 그는 너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줄 뿐만 아니라 너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람이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평범하여 언급할 가치조차 없겠느냐? 그의 진리가 너희로 하여금 마음으로나 입으로 탄복게 하기에 부족하냐? 그의 행사가 너희로 하여금 눈으로 탄복게 할 수 없느냐? 아니면 그가 이끄는 길이 너희가 걸어갈 가치가 없느냐? 과연 어떤 것이 너희에게 그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하고, 그를 저버리고 피하게 하느냐? 진리를 선포하고 공급하는 이도 이 사람이고, 너희가 행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이도 이 사람이다. 너희는 아직도 이러한 진리에서 하나님이 사역한 발자취를 찾을 수 없단 말이냐? 예수의 사역이 없었다면, 인류는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육신이 없다면, 십자가에서 내려온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고, 영원히 새 시대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평범한 사람이 오지 않았다면, 너희는 영원히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볼 기회도, 자격도 없었을 것이다. 너희는 다 진작에 멸망되었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두 번째로 육신을 입고 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너희를 너그럽게 용서하였고, 너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었다. 어쨌든 내가 마지막으로 너희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역시 이것이다. 말씀이 육신 된 이 평범한 사람이 너희에게 지극히 중요한 존재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한 매우 큰 일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너는 아느냐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발췌문 133)
매일 말씀 묵상 <너는 아느냐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발췌문 133)
사진제공: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전능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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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6/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발췌문 109)


하나님이 소돔을 멸한 일에서 너희는 하나님 진노의 본질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노에 불순물이 있었느냐? 하나님의 노가 순결하지 않으냐? 사람들이 하는 말로, 하나님의 진노가 순수하지 않으냐? 하나님의 진노 이면에 계략, 음모,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었느냐? 너희에게 엄숙하고 진지하게 알려 주겠다. 하나님의 진노에는 사람이 의심할 만한 그 어떤 요소가 없고, 하나님은 순수하게 노하며 다른 속셈이나 목적이 없다. 하나님이 노하는 이유는 순결하며 질책하거나 흠잡을 데가 없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고,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의 일부이자 창조주가 피조물과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점이다.

사람이 타인의 앞이나 뒤에서 화를 낼 때는 다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이익이나 이미지, 체면 등을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화를 내는 데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이는 기준도 없다. 화를 내고 싶으면 마음대로 내며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화는 사람의 타락(직역: 패괴) 성품에서 온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다 혈기와 천성적인 것에 속하며, 정의로움과 정의롭지 않음을 논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과 본질에는 진리와 부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락한 인류의 화는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논할 수 없다. 사탄에 의해 타락한 사람의 행동은 하나같이 다 타락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고 타락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이 이론적으로 얼마나 정당하든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이 노할 때, 사악한 세력은 저지당하고 사악한 사물은 훼멸되지만 정의롭고 긍정적인 사물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 계속 이어질 수 있다. 하나님이 진노하는 이유는 정의롭지 않고 부정적이고 사악한 사물이 정의롭고 긍정적인 사물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거나 교란시키거나 파괴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는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정의롭고 긍정적이며 아름답고 선한 사물의 존재를 수호하고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 규칙과 법칙을 수호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근본 원인이다. 하나님의 노는 하나님의 성품이 매우 정당하고 자연스럽게, 또 진실하게 나타난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 이면에 다른 속셈이나 교활함이나 음모가 없고 타락한 인류에게 공존하는 욕망, 간사함, 악랄함, 폭력성, 사악함 등은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진노를 발하기 전에 이미 모든 일의 본질을 분명하고 뚜렷하게 보았고, 이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정의와 결론을 내렸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일에 대한 목표와 태도가 아주 명확하다. 두루뭉술하거나 맹목적이지 않고, 충동적이거나 마음 내키는 대로 하지 않으며, 원칙이 없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 또한 하나님 진노의 실제적인 면이다. 인류는 바로 하나님 진노의 이 실제적인 면 덕분에 정상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잃게 되면 인류는 비정상적인 삶으로 추락하게 되고, 정의롭고 아름다우며 선한 모든 사물은 멸해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의 진노를 잃게 되면 피조물의 생존 법칙과 규칙이 파괴되고 심지어 완전히 뒤집어질 것이다. 인류가 만들어진 후, 하나님은 공의로운 성품으로 계속해서 인류의 정상적인 삶을 지키고 유지하였다. 그의 공의로운 성품에는 진노와 위엄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악한 사람과 사물,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모든 것은 징벌받고 통제되고 멸망된다.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은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에서 그에게 대항하는 자, 사탄의 공범자 그리고 사탄의 종이 된 더러운 귀신과 악령을 그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끊임없이 치고 멸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해서 앞으로 이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인류 가운데 가장 정의로운 일은 하나님의 진노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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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육에 속한 자는 누구도 그 분노의 날을 피할 수 없다>(발췌문 336)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1)

          ➤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발췌문 3)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1)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과 언약을 세우다

(창 9:11~13)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만물을 창조한 후, 창조주의 권능이 ‘무지개 언약’으로 또 한 번 입증되고, 다시 나타나다

창조주의 권능은 언제나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나타나고 행사된다. 그는 만물의 운명을 주재할 뿐만 아니라, 그가 친히 빚은 인류 ― 다른 구조와 형식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특별한 피조물 ― 역시 주재하고 있다. 만물을 창조한 후에도 창조주는 그의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물과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권능을 정식으로 행사한 것은 인류가 그의 손에 의해 탄생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인류를 경영하고 주재하기로 하였고, 인류를 구원하기로 하였다. 또한 진정으로 인류를 얻고자 하였는데, 바로 만물을 관리할 수 있는 인류를 얻고자 한 것이다. 그는 그러한 인류가 그의 권세 아래에 살아가며, 그의 권세를 알게 하고 그의 권세에 순종하게 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으로 그의 권세를 선포하고, 그의 권세로 자신의 말씀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권세는 어디서든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친숙한 일부 특수 사례들만을 뽑았다. 이것으로 너희가 하나님의 유일성과 하나님 권능의 유일무이함을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게 하겠다.

창세기 9장 11절에서 13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기록과 관련된 말씀과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다른 부분도 있다. 유사한 부분은 무엇일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말씀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들을 행한 것이다. 다른 부분이라면, 이 단락의 말씀은 하나님과 사람의 대화라는 점이다. 이 대화는 사람과 언약을 세우고 사람에게 언약에 대해 알려 주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그때 권능을 행사한 것은 사람과의 대화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즉, 인류가 창조되기 이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분부와 명령이었으며, 그가 만들고자 하는 피조물에게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대상이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은 사람과의 대화이며, 또한 그가 인류에게 하는 당부와 훈언이고, 그가 만물에게 하달하는 권능을 지닌 명령이었던 것이다.

이 단락에서는 하나님이 어떠한 일들을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느냐? 거기에는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 하나님이 사람과 언약을 세우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사람에게 하나님이 더 이상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을 것임을 알려 주고, 또한 이를 위해 하나님이 증거를 세운다고 하였다. 그 증거는 무엇이냐?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내가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이것은 창조주가 인류에게 한 원래의 말씀이다. 그가 말씀함과 동시에 무지개가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너희는 다 무지개를 본 적이 있을 텐데, 무지개를 보았을 때, 이 무지개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고 있느냐? 과학으로는 이 사실을 논증할 방법이 없다. 과학으로는 그 근원을 찾지 못했으며, 그것의 행방도 찾지 못했다. 이것은 창조주가 사람과 세운 언약의 증거이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는 필요 없다.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고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말씀이 있고 난 후, 권능이 지속되는 결과인 것이다. 창조주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과 세운 언약과 약속을 지켜 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무지개를 출현시켜 하나님이 세운 언약의 증거로 삼은 것은 창조주에게나 창조된 인류에게 있어,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천상의 규율이자 법칙이라는 의미이다. 변함없이 지속되는 이 법칙은 창조주가 만물을 창조하고 난 후 그의 권능이 또 한 번 진정으로 구현된 것이며,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이 무한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지개’를 그 언약의 증거로 삼은 것은 창조주 권능의 지속과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일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행한 것이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과 세운 언약의 증거이다. 이는 그가 무엇을 하고자 결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루고, 어떤 방식으로 성취하겠다고 하면, 그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사람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말씀이 있고 난 몇천 년 후인 오늘날에도 인류는 하나님이 말씀한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로 인해, 그 일은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 무지개를 없어지게 할 수 없고, 그것의 규칙을 바꿀 수도 없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능인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면 그대로 지키고, 그대로 지키면 반드시 이루어지며, 이루어지면 반드시 영원하다.” 이 말은 여기서 아주 명확하게 구현되는데, 바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의 확실한 증거이자 특징이다. 이러한 증거와 특징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고, 그 어떤 피조물에게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어떤 비피조물 가운데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증거와 특징은 유일무이한 하나님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 특유의 신분과 본질을 피조물과 구분시켜 준다. 아울러, 그것은 하나님 자신 이외의 모든 피조물과 비피조물이 영원히 초월할 수 없는 증거이자 특징인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사람과 언약을 세운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그는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줌과 동시에 그의 마음도 알려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특수한 증거를 사용해서 사람과 언약을 세우고, 그 증거로 그가 사람과 세운 언약에 확신을 준 것이다. 이 ‘언약’을 세웠다는 것이 하나의 큰 사건이 아니냐? 얼마나 큰 사건일까? 바로 그 ‘언약’의 특별함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약이 아니며, 또 단체와 단체 간의 언약도 아니다. 더욱이 한 국가와 또 다른 국가 간에 세운 언약도 아니며, 창조주가 인류 전체와 세운 언약이다. 이 ‘언약’의 유효 기간은 창조주가 만물을 폐기하는 그날까지이며, 이 ‘언약’의 시행자는 창조주이고, 그것의 수호자 역시 창조주이다. 요컨대, 인류와 세운 ‘무지개 언약’의 모든 것은 창조주와 사람의 대화에 따라 응하고 이루어졌으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권세에 순종하고, 따르고, 신뢰하며, 그 권세를 깨닫고 우러르고 칭송하는 것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느냐? 유일무이한 하나님 이외에 이러한 언약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매번 무지개가 나타나는 가운데, 그것은 인류에게 창조주가 사람과 세운 ‘언약’을 알려 주고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창조주가 인류와 세운 언약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가운데, 그것이 인류에게 나타내 보여 주는 것은 ‘무지개’와 ‘언약’ 자체가 아니라, 창조주의 영원불변의 권능인 것이다. 무지개의 출현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창조주가 은밀한 곳에서 행하는 놀랍고도 오묘한 행사이며, 창조주의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변치 않는 권능의 생생한 구현이다. 이 모든 것들이 창조주의 또 다른 면에서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권능의 구현이 아니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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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발췌문 3)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발췌문 105)










7/05/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발췌문 105)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야 돌이켜서 그 집으로 들어 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롯이 문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말라 그들이 가로되 너는 물러나라 또 가로되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나아와서 그 문을 깨치려 하는지라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 들이고 문을 닫으며 문밖의 무리로 무론 대소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곤비하였더라”(창세기 19:1~11)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세기 19:24~25)

소돔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 흔적도 없이 멸망당하다

소돔 성 사람들은 두 사자를 보았을 때, 그들이 거기에 온 이유를 묻는 자가 없었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러 왔는지도 묻는 자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무리 지어 와서 다짜고짜 미친개와 같이, 악한 이리와 같이 그 두 종을 잡으려 하였다. 당시에 일어난 일을 하나님은 다 보고 있지 않았겠느냐? 사람의 그런 행위와 그런 일을 대함에 있어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나님은 이 성을 멸하리라 뜻을 정하였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았으며 기다리지 않았고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의 날이 오면 하나님은 하고자 했던 일을 그대로 행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19장 24절과 25절에서 말씀하신바,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라는 이 두 구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이 성을 멸하였는지를 말해 주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이 무엇을 멸하였는지도 알려 주고 있다. 우선, 성경에는 하나님이 불로 이 성을 태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성안의 사람에서부터 땅에서 난 모든 것까지 다 멸할 정도로 불태운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늘에서 내린 불이 이 성을 멸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안의 사람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함께 멸하고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성을 멸한 후, 땅에는 더 이상 생물이 살지 못하였고, 더 이상 생기가 없었으며, 더 이상 생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성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고, 정적만 흐르는 공터로 변해 버렸다.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행이 다시는 있을 수 없었으며, 살육과 피비린내가 다시는 없었다.

하나님은 왜 이 성을 이렇게 완전히 불태웠을까? 너희는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인류와 만물이 그렇게 멸해지는 것을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었을까? 네가 만약 하늘에서 떨어진 불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이 멸망시킨 대상과 그 성이 멸망당한 정도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노한 정도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성을 증오할 때는 징벌을 내릴 것이며, 하나님이 어떤 성에 염증을 느낄 때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알 수 있도록 계속 경고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성을 없애고 멸하기로 뜻을 정하였다면,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을 거스르는 일이 생겼다면 더 이상 징벌이나 경고를 주지 않고 곧바로 멸한다. 그리하여 완전하고 철저히 사라지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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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발췌문 10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발췌문 318)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4)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발췌문 104)


어째서 예수의 그 단계 사역은 성육신의 의의를 완전케 하지 못했다고 하겠느냐? 말씀이 완전히 육신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 중 일부일 뿐이다. 그는 구속 사역만 했을 뿐, 사람을 완전히 얻는 사역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세에 또다시 성육신한 것이다. 이번 사역도 평범한 육신으로 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한다. 그에게는 비범한 인성이 전혀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사역하고, 완전한 사람으로 사역하며, 완전한 육신으로 사역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비범한 면이 조금도 없는 육신이자, 하늘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표적을 나타내지도, 기적을 행하지도 않으며, 예배당에서 종교의 실상을 폭로하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두 번째 성육신이 하는 사역은 첫 번째 성육신이 한 사역과 완전히 다르며, 심지어는 똑같은 점이 하나도 없고, 첫 단계의 사역을 이번 단계에서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사역은 첫 번째에 한 사역과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근원이 다르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들의 근원이 하나인지에 대한 판단은 육신이 하는 사역의 성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육신의 외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3단계의 사역에는 총 두 번 성육신하였는데, 이 두 번의 성육신 사역은 모두 시대를 여는 것이며 새 사역을 하는 것이다. 두 번의 성육신은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 사람의 육안으로는 이 두 육신의 근원이 하나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다. 물론, 이는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일이고, 사람의 사유로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경지이다. 그들의 사역은 하나의 영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 본질은 처음부터 하나다. 두 번의 성육신의 근원이 하나인지를 알아보려면 육신의 출생 연대나 출생지, 혹은 육신의 다른 조건들을 볼 것이 아니라 육신이 나타낸 신성 사역을 봐야 한다. 두 번째로 성육신한 하나님은 예수가 행한 사역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역할 때마다 이전의 방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길을 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한 이유는 첫 번째 육신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긴 인상을 더 깊게 하거나 공고히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첫 번째 육신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긴 형상을 보완하고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에 깊이를 더하기 위한 것이고,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모든 규례를 깨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잘못된 형상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행한 어느 한 단계의 사역만 보고서는 하나님을 완벽하게 알 수 없다. 일부만 알 수 있을 뿐, 완전히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그의 모든 성품을 다 나타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깨닫는 능력에 한계가 있기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사람의 언어로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표현할 수 없을진대, 단 한 단계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밝힐 수 있겠느냐? 육신의 사역은 정상 인성에 가려져 있기에 사람은 신성의 말씀을 통해 그를 알 수 있을 뿐, 육신의 외형을 보고서는 그를 알 수 없다. 육신을 입고 온 그는 서로 다른 사역을 통해 사람에게 그의 사역이 단계마다 다르다는 점을 알게 한다. 그래야 육신을 통해 하는 그의 사역을 사람들이 일정 범위에 국한하지 않고 전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두 번에 걸친 성육신의 사역이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육신의 본질과 사역의 근원은 동일하다. 다만 두 차례의 성육신은 서로 다른 두 단계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두 시대에 나타났을 뿐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본질과 근원은 서로 같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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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발췌문 318)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8)




7/0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발췌문 318)


네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서 너의 사람됨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실제로부터 출발하고 현실을 마주해야지 허무맹랑한 것들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사람으로서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인생의 의미까지 없어진다. 너의 추구와 인생은 그저 허망함과 기만 속에서 덧없이 흘러갈 뿐이고, 네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들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너는 진리와 무관한 그릇된 이치밖에 얻지 못한다. 그런 것들은 너를 공허한 상태에 빠지게 할 뿐, 네가 생존하는 의미나 가치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이렇게 되면 너의 일생은 그 어떤 가치도 의미도 없게 될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한평생을 헛되이 보내게 될 텐데, 그런 삶을 어떻게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런 사람은 말 그대로 짐승이 아니냐?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길을 가려고 하지만, 보이는 하나님은 추구하지 않고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하나님만 숭배한다면, 이것은 더욱 헛된 추구가 아니냐? 네가 추구하는 바는 결국 잿더미로 변할 텐데, 그런 추구가 너에게 또 무슨 이로움이 있겠느냐? 사람의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만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런 것은 신묘하기 그지없고, 상상하기도 어려우며, 평범한 사람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 비현실적인 것일수록 사람은 더 분석하며, 만사를 제쳐 두고 추구하면서 그것을 얻으려는 망상까지 한다. 또한, 그런 비현실적인 것일수록 사람은 더 자세히 생각하고 분석하며, 심지어 치밀하게 구상하기까지 한다. 이와 반대로, 현실적인 것일수록 사람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면서 그것을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심지어 멸시하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 오늘날 행하는 나의 현실적인 사역에 대한 너희의 태도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냐? 이렇게 현실적인 것일수록 너희는 더 경시하고, 그것을 알아볼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며, 아예 거들떠보려 하지도 않는다. 너희는 기준이 낮은 이런 현실적 요구를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심지어 가장 실제적인 하나님에 대해서도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그의 실제와 정상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다면 너희의 믿음은 모두 막연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이전의 막연한 하나님은 그토록 굳게 믿었으면서도 오늘날의 실제 하나님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은 어제의 하나님과 오늘의 하나님이 다른 시대의 하나님이기 때문이 아니냐? 어제의 하나님은 위대한 하늘의 하나님이고, 오늘의 하나님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땅의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냐? 사람이 숭배하는 하나님은 관념 속에서 탄생한 하나님이고, 오늘의 하나님은 땅에서 탄생한 실제적인 육신이기 때문이 아니냐? 결국, 오늘날의 하나님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사람이 추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 오늘날의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공교롭게도 사람이 가장 하기 싫어하고 또 난감해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난처하게 하고, 또 일부러 자신들의 허물만을 들춰내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래서 현실을 추구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성육신 하나님의 원수, 즉 적그리스도가 되었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 아니냐? 이전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을 때, 너는 단지 종교인이거나 경건한 신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육신한 후, 경건했던 많은 신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적그리스도가 되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 원인을 아느냐? 너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현실을 중요시하지 않았고, 진리도 추구하지 않았으며, 공허한 것에만 매달렸다. 그것이 바로 네가 성육신한 하나님의 원수가 된 가장 뚜렷한 원인이 아니냐? 성육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라 일컫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는 자는 바로 적그리스도가 아니냐? 네가 믿고 사랑하는 분이 정말 육신에 거하는 이 하나님이 맞느냐? 현실을 가장 중요시하고 ‘유달리’ 정상적이며 생생하게 살아 계신 이 하나님이 맞느냐? 네가 추구하는 목표는 도대체 무엇이냐? 하늘이냐, 아니면 땅이냐? 고정 관념이냐, 아니면 진리냐? 하나님이냐, 아니면 신선이냐? 사실, 진리는 가장 실제적인 것이고 인류의 최고 인생 격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자 하나님 자신이 직접 행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 격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격언은 종합해 낸 것도 아니고 위인의 명언도 아니라 천지 만물의 주재자가 인류에게 발한 음성이다. 또한 사람이 이것저것 종합해서 생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유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인생 격언’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 진리 실행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 ‘요구’의 본질은 가장 현실적인 진리이지, 그 누구도 이를 수 없는 공허한 이치가 아니다. 네가 추구하는 것에 이치만 넘쳐 나고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면, 너는 진리를 거역하는 사람이 아니냐? 이런 자는 진리를 반대하며 공격하는 사람이 아니냐? 이런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일 수 있겠느냐? 실제가 없는 이 사람들은 모두 진리를 배반한 자이자 패역한 천성을 가진 자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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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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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발췌문 286)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4)



사탄이 다시 욥을 시험하다(온몸에 악창이 나다)

1) 하나님의 말씀

(욥 2:3)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욥 2:6)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2) 사탄의 말

(욥 2:4~5)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욥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진정으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를 느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탄에게 질문을 하자, 사탄은 속으로 기뻐했다. 왜냐하면, 사탄은 하나님 눈에 완전한 사람을 공격할 기회가 또 한 번 주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탄에게는 이 얼마나 얻기 힘든 기회인가! 사탄은 이 기회를 틈타 욥의 믿음을 철저하게 무너뜨리려고 했다. 그렇게 하여 욥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 더 이상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더 이상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은 언제든지 욥을 자기 수중에서 멋대로 우롱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자신의 사악한 의도를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을지라도 그의 악독한 본성은 억제할 수 없었다. 그 실상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탄의 대답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2:4~5). 사탄의 이 말에서 사람은 자연히 사탄의 악독함에 대해 실제적인 인식과 느낌을 갖게 된다. 사탄의 이런 황당무계한 논리를 듣게 되면, 진리를 사랑하고 사악함을 증오하는 모든 사람들은 사탄의 비열함과 파렴치함을 증오할 것이다. 또한 사탄의 그릇된 논리에 염증과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욥을 위해 기도와 축원을 올릴 것이다. 정직한 자가 더 순전해질 수 있기를 기도할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자가 영원히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빛 속에서 살고,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 속에서 살기를 바랄 것이다. 또한, 욥의 의로운 행동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을 영원히 편달하고 격려하기를 바랄 것이다. 비록 사람들이 사탄의 이러한 말 속에서 사탄의 악독한 속셈을 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아주 흔쾌히 사탄의 ‘간청’을 들어주었다. 다만 사탄에게 또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욥 2:6). 사탄이 이번에는 손을 뻗어 욥의 뼈와 살을 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라고 말씀했다. 이 말씀의 뜻은 욥의 육체를 사탄의 손에 붙이지만 그의 생명은 보존해야 하며, 그의 생명을 앗아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어떠한 방식과 수단으로 욥을 대해도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후, 사탄은 허둥지둥 욥의 앞에 이르러 손을 뻗어 그의 살가죽을 쳤으며, 그의 온몸에 악창이 나게 했다. 욥은 살가죽의 통증을 느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기묘함과 거룩함을 찬양했다. 그 모습에 화가 난 사탄은 더 길길이 날뛰었다. 사탄은 사람을 해치는 쾌감을 느꼈기 때문에 손을 뻗어 악창이 난 욥의 살을 움켜쥐어 곪아 터지게 했다. 그 순간 욥은 피와 살에 너무나 큰 통증을 느껴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온몸의 피부와 살을 문질렀다. 마치 그러면 육체의 통증으로부터 오는 마음의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듯이 말이다. 욥은 하나님이 곁에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더 강해지려고 애를 썼다. 그리하여 또 한 번 무릎 꿇고 엎드렸다. ‘당신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사람의 고통을 살피시나이다. 당신께서 어이하여 사람의 나약함까지 생각해 주시나이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사탄은 욥이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보았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는 것은 보지 못했다. 이에 사탄은 급하게 손을 뻗어 욥의 뼈를 쳤다. 욥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욥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느꼈다. 마치 살가죽이 뼈에서 벗겨지는 것 같았고, 또 뼈가 조금씩 부서지는 것 같았다. 수많은 화살이 심장을 뚫는 것 같은 통증에 그는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욥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극한에 달했다…. 그는 소리치고 싶었으며, 몸의 살가죽을 뜯어내 통증을 덜어 내고 싶었다. 그러나 욥은 참고 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몸의 살가죽을 뜯어내지도 않았다. 욥은 사탄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욥은 또다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하지만 이때는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 욥은 여호와 하나님이 항상 그의 앞에, 그의 뒤에, 그의 좌우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가 아파할 때 아파하는 그 모습을 본 적이 없으며, 그때는 얼굴을 가리고 자신을 숨겼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의미는 고통받게 하고자 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때 욥은 눈물을 흘렸다. 욥은 몸의 통증은 억지로 참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더 이상 억제할 수 없었다. ‘인간은 너무도 나약한 존재입니다. 너무 연약하고 무기력하며 여리고 무지합니다. 그런데 당신께서 어찌하여 이처럼 생각해 주시고 긍휼히 여기시나이까? 당신께서 저를 치시고 오히려 당신이 고통스러워하시나이다. 사람이 무슨 가치가 있어 당신께서 생각해 주고 마음에 두시나이까?’ 욥의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지만, 하나님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조용히 바라보기만 할 뿐…. 사탄은 수를 다 썼어도 성과가 없자 조용히 물러났다. 그러나 욥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은 결코 이로 인해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욥에게서 나타낼 큰 능력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욥의 이야기는 사탄의 퇴각으로 인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더 멋진 장면은 각 인물의 출현에 따라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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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더보기: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8)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발췌문 286)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8)







7/03/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8)



욥은 사탄을 이겨 하나님 눈에 진정한 사람이 되었다

욥은 처음의 시련에서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로 인해 무너지지 않았고, 하나님께 죄를 짓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사탄의 시험을 이겨 냈고, 재산과 자녀 그리고 몸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는 시련을 이겨 냈다. 다시 말해, 욥은 하나님이 그의 소유를 거두어 간 것에도 순종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감사와 찬양까지 드릴 수 있었다. 이것이 욥이 사탄의 첫 번째 시험에서 보여 준 것이며, 또한 욥이 하나님의 첫 번째 시련에서 증거한 것이다. 두 번째의 시련에서 사탄은 손을 뻗어 욥에게 갖은 해를 가했다. 욥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고통을 겪었을지라도 그의 증거는 오히려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는 그의 강인함과 믿음,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경외심으로 또 한 번 사탄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가 보여 준 것과 증거한 것 역시 또 한 번 하나님께 인정받고 열납되었다. 이번 시험에서 욥은 자신의 실제 행동을 통해 사탄에게 선포했다. 육체의 고통으로도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순종을 변하게 할 수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과 경외심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선포한 것이다. 또한 죽음에 이르렀어도 하나님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자신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버리는 일 또한 없을 것이라고 선포한 것이다. 욥의 의연함을 본 사탄은 겁이 났다. 욥의 믿음으로 사탄은 두렵고 간담이 서늘해졌으며, 사탄과 사생결단하겠다는 욥의 기세를 보고 침통해졌다.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에 사탄은 속수무책이 되었다. 그래서 사탄은 욥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하는 짓을 그만두었다. 이것은 욥이 세상을 이기고, 육체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사망을 이겨 하나님께 속한 완전한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욥은 그 두 차례의 시련 속에서 굳게 섰으며,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실제로 살아 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그의 생존 법칙의 범위 역시 확장될 수 있었다. 그 두 번의 시련을 겪은 후, 욥은 인생에 더욱 풍부한 경험이 생겼다. 이 ‘경험’으로 인해 그는 더 성숙해지고 원숙해졌으며, 더 강인해지고 더 믿음 좋은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또한, 자신이 지키고 있는 순전함의 정확성과 가치를 확신하게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준 시련으로 욥은 사람을 염려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게 되었으며, 하나님 사랑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로부터 욥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이 더 추가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준 시련에 욥은 천 리 밖으로 밀려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다. 욥은 육체의 고통이 극한에 달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보살핌을 느끼게 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게 되었다. 그런 모습은 욥이 일찍이 계획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러운 발현이었다. 욥의 그 ‘자연스러운 발현’은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 욥은 자신을 미워했고, 하나님이 고통받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잊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때의 욥은 오랜 세월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사모하고 그리워하던 데서 헤아리고 사랑하는 경지로 자신을 승화시켰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 순종과 경외심을 헤아림과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상처 주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 어떤 행동도 용납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이 슬퍼하거나 상심하는 것은 물론, 괴로워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눈에 욥은 여전히 변함없는 욥이었지만, 그의 믿음과 순종,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하나님은 완전한 만족과 기쁨을 얻게 되었다. 그때의 욥은 하나님이 기대했던 완전함에 이르렀으며, 하나님 눈에 명실공히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었다. 욥은 자신의 의로운 행동으로 사탄을 이겼고,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섰으며, 온전하게 되었고, 자신의 생명 가치를 승화시켰으며, 초월하게 되었다. 또한, 더 이상 사탄에게 공격받지 않고 시험당하지 않는 사람의 첫 사례가 되었다. 욥은 의로움으로 인해 사탄에게 참소당하고 시험당했으며, 의로움으로 인해 사탄의 손에 넘겨졌고, 또한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이기고 사탄을 물리쳤으며 굳게 섰다. 그로부터 욥은 더 이상 사탄에게 넘겨지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으며, 진정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빛 속에서 살고, 사탄의 감시와 해가 없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눈에 진정한 사람이 되었고, 자유로워졌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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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5)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발췌문 286)



너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으냐?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으냐?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가 오리라는 것만 믿었을 뿐 생명 진리는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완고하고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메시야를 볼 수 있겠느냐?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이유는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더욱이 메시야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본 적도, 메시야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에 메시야란 이름만을 헛되이 지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메시야의 본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또한 그 바리새인들의 본질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 그들의 원칙은 ‘당신이 전하는 도가 아무리 대단하고, 당신의 권병이 아무리 크다 해도, 메시야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엉터리 같은 관점 아니냐? 다시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는 예수를 털끝만큼도 알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너희도 당시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너무도 쉽게 저지르지 않겠느냐? 너는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느냐? 정말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 보증할 수 있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줄 아느냐?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지 않을지 모른다면, 나는 네가 이미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메시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대적하고, 저버리고, 비방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저버리고 모욕할 수 있으며, 심지어 예수의 재림을 사탄의 미혹으로 여길 수도 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다시 돌아온 예수를 정죄할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두렵지 않으냐? 너희는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을 훼손하고, 예수가 선포한 말씀을 경멸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너희가 이처럼 미망에 빠져 있는데 예수에게서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너희가 이처럼 고집부리며 깨닫지 못하는데 어찌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육신으로 돌아오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가 ‘흰 뭉게구름’을 타고 강림하기만을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은 분명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이며, 분명 멸망할 부류이다. 너희는 오로지 예수에게서 오는 은혜를 받고 천국의 복을 누릴 생각만 할 뿐, 예수가 하는 말씀을 한 번도 청종한 적이 없다. 또 예수가 육신으로 다시 돌아와 선포한 진리도 받아들인 적이 없다. 너희는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이 사실을 무엇과 맞바꾸겠느냐? 죄짓기를 반복하고 입술로 죄를 자복하는 너희의 성심이냐? 너희는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예수께 무엇을 제물로 바치겠느냐? 너희가 자신을 높이면서 오랫동안 사역한 자산이냐? 너희는 무엇으로 재림한 예수가 너희를 신임하도록 하겠느냐? 어떤 진리에도 순종하지 않는 너희의 그 교만한 본성이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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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8)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5)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4)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8)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분부

(욥 2:6)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사탄은 감히 창조주의 권능을 초월하지 못했으며 만물은 규칙 가운데 생존한다

이것은 욥기에서 발췌한 말씀이다. 이 말씀 가운데의 ‘그’는 욥을 가리킨다. 이 말씀은 비록 짧지만, 많은 문제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것이 기록한 것은 하나님이 영계에서 사탄과 나눈 구체적인 대화로서, 하나님이 말씀하는 대상인 사탄을 설명하였다. 또한 하나님 말씀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록하였다. 그 내용은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분부이고 명령이다. 그 명령의 세부적인 사항은 욥의 목숨과 관련되며, 하나님이 사탄에게 정해 준 욥을 대하는 마지노선에 관련된다. 즉, 오직 욥의 생명은 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우선 이것이 하나님이 사탄에게 한 말씀이며, 욥기의 원문과 결부시켜 하나님이 어떠한 배경하에서 이러한 말씀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사탄은 욥을 참소하고자 했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동의를 얻어야만 욥을 시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욥을 시험하고자 하는 사탄의 요구를 들어준 상황에서, 하나님은 사탄에게 이러한 조건을 걸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였다.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이 말씀은 어떤 성격을 띠느냐? 확실히 그것은 분부이고 명령이다. 이 말씀의 성격을 파악한 후에 너는 이 명령의 선포자가 하나님이며, 명령을 받아들이는 자가 사탄임을 알게 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양자의 관계는 그 명령을 통해 이 말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보여 준다. 물론 이 역시 성경에서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 기록에서 보여 주는 영계에서의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관계이며, 하나님과 사탄의 신분과 지위의 차이이다. 또한 지금까지 인류가 구체적인 사례와 구체적인 문자 기록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과 사탄의 신분, 지위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 기록이 인류가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아는 데 있어 중요한 문헌이며, 인류에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였고, 그것으로 영계에서의 창조주와 사탄의 대화 중 일부를 통해 창조주 권능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게 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씀 속에서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능이 또 한 번 입증되었다.

외적으로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은 사탄과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실제로 말씀하는 태도와 서 있는 위치는 사탄보다 높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명령하는 어조로 사탄에게 분부한 것이다. 사탄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알려 주고, 욥을 이미 사탄의 손에 붙였으니 마음대로 욥을 대할 수는 있으나 욥의 생명을 취할 수는 없음을 알려 주고 있다. 그 함축적 의미는 비록 욥을 사탄의 손에 붙였으나 욥의 생명까지 붙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이 있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에게서 욥의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태도는 사탄에게 한 이 명령에서 아주 명확하게 나타난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이 사탄과 대화하며 서 있던 위치 역시 이 명령에서 나타났다. 여호와 하나님이 서 있는 위치는 빛과 공기를 만들고 만물과 생명체를 만든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만물과 생명체를 주재하는 하나님이고, 인류를 주관하고 음부를 주관하는 하나님이며, 모든 생명체의 생과 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인 것이다. 영계에서 하나님을 제외하고 누가 감히 사탄에게 이와 같은 명령을 내릴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또한 어찌해서 사탄에게 친히 명령을 내린 것일까? 욥의 목숨을 포함해서 사람의 생명은 모두 하나님이 주관하고, 하나님은 사탄이 침해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며, 욥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했을 때에도, 욥의 생명을 앗아가지 말라는 이 특별한 뜻을 전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사탄은 감히 초월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명령과 구체적인 분부에 대해 사탄은 각별히 조심하고 명령에 복종하고 따르며 감히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물론 사탄 역시 마음대로 하나님의 어떤 명령도 바꿀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허락한 범위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감히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하나님 권능의 위력이 아니겠느냐? 하나님 권능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냐? 사탄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자기가 속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인류보다 훨씬 잘 안다. 하나님의 지위와 권능에 대해 사탄은 영계에서 확실하게 보았다. 하나님 권능의 위력과 하나님의 권능이 행사되는 원칙에 대해 사탄은 깊이 느꼈다. 그래서 감히 태만하거나 그 어떤 것도 위반하려고 하지 못하며, 감히 하나님 권능을 벗어나 그 어떤 일도 하지 못한다. 또한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도 그 어떤 도전도 감히 하지 못한다. 사탄은 본성이 사악하고 교만할지라도, 하나님이 정해 준 한계와 범위를 감히 벗어나지 못했다. 천만년 동안, 사탄은 엄격하게 그 한계를 지키며 그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분부와 명령을 준수하며 지금껏 감히 한계선을 벗어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사탄이 비록 악독하긴 하지만, 타락한(직역: 패괴된) 인류보다 훨씬 ‘현명’하다. 사탄은 창조주의 신분을 알고 자신의 한계를 안다. ‘규율을 지키는’ 사탄의 행위로부터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은 사탄이 뛰어넘을 수 없는 천상의 법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유일성,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해 만물이 법칙 가운데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인류가 하나님이 제정한 궤적 가운데서 번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이 규율을 깰 수 없고 이 법칙을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창조주의 손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창조주의 결정에서 온 것이며, 창조주의 권능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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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5)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85)







7/02/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35)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창 22:16~18)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마음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씀은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그에게 내리는 축복의 말씀만 들었을 뿐이다. 아브라함은 그 순간 하나님의 진정한 마음을 알 수 있었겠느냐?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가리키며 맹세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마음은 여전히 외롭고 여전히 슬펐다. 그가 하고자 하는 것, 그가 계획한 것에 대해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그때, 아브라함을 포함하여 그와 마음을 나누며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며, 더욱이 그가 하고자 하는 사역에 협력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겉보기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얻었고, 그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을 얻은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에 대한 그 사람의 인식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비록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렸을지라도, 마음은 여전히 만족을 얻지 못했다. 그가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의 경영이 비로소 막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얻고자 하는 사람, 그가 보고자 하는 사람, 그가 기뻐하는 사람이 아주 멀리 있어서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려야 하고 인내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때는 하나님 자신 외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얻고자 하며, 무엇을 바라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음이 아주 흥분된 동시에 무겁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다음 사역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준 일을 통해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이유 하나로 하나님은 그에게 이처럼 큰 복을 내렸다. 비록 표면적으로 볼 때 이 일은 아주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를 귀히 여기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진심을 보이는 자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같은 진심을 어느 정도로 소중히 여기느냐? 아마 너희는 그 정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자란 후, 하나님은 또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요구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조금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수행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했다. 아브라함의 그 진심에 하나님은 감동하였으며, 그것을 귀히 여겼다. 어느 정도로 귀하게 여겼느냐? 귀하게 여긴 이유는 무엇이냐?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세상이 놀랄 만한 일’을 해낸 것이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전에 없던 만족감을 느꼈으며, 자신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을 얻은 기쁨을 느꼈다. 그런 ‘만족감’과 ‘기쁨’은 하나님이 손수 만든 피조물로부터 온 것이었다. 하나님이 보기에 이는 인류가 창조된 이래로 하나님께 드린 가장 진귀한 첫 번째 ‘제물’이었다. 이 ‘제물’은 하나님이 그토록 힘들게 기다렸던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 ‘제물’을 창조된 인류로부터 받은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선물로 간주하였다. 또한 그것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기울인 심혈로 얻게 된 첫 번째 성과를 보았고, 인류에게서 희망도 보았다. 그 후 하나님은 이와 같은 사람들이 더 나와 그와 함께하며, 그를 진심으로 대하고, 진심으로 그를 헤아리기를 바랐다. 심지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계속 살아가기를 희망하였다. 그는 아브라함 같은 마음을 가진 자가 그와 함께하고, 그의 경영에 계속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했든, 그것은 단지 바람일 뿐이고 생각일 뿐이었다. 아브라함은 그저 하나님께 순종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에 ― 하나님을 알고 증거하고 하나님과 동심합의하는 것에 ― 훨씬 못 미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그 일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진심과 순종을 보게 되었으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검증을 통과한 것도 보게 되었다. 비록 하나님이 그의 진심과 순종을 열납했을지라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기(知己)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했으며,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사람이 되기에도 부족했다. 또한 하나님과 동심합의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은 여전히 외롭고 조급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외롭고 조급할수록 최대한 빨리 그의 경영을 계속해 나가려고 했고, 한 무리를 선정하고 얻어 그의 경륜을 이루고 그의 뜻을 이루려고 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그런 간절한 마음은 바뀐 적이 없다. 처음 인류를 창조한 후 하나님은 이긴 자들, 즉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깨닫고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나와 그와 동행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나님의 이런 마음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얼마나 험난하든, 하나님이 희망하는 목표가 얼마나 멀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는 변한 적이 없고, 그것을 포기한 적도 없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말하면 너희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느낄 수 있느냐? 아마도 그렇게 실감 나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느껴 보거라!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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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4)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85)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103)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4)



사람의 결말은 누가 정하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하는 너희의 태도이다. 이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이 태도는 너희가 최종적으로 멸망에 이를지, 아니면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 예비한 아름다운 종착지에 들어갈 것인지를 결정한다.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하나님은 이미 20년 넘게 사역하였다. 20년이 넘는 이 기간 동안 너희는 자신의 행실에 대해 다소 모호하겠지만,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모든 사람의 행실을 확실하고 진실하게 기록해 놓았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고 자신이 전하는 도를 듣기 시작해서부터 점점 더 많은 진리를 깨닫고 본분을 이행하기까지, 사람이 이 기간에 보였던 각종 행실을 다 기록해 두었다.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여러 가지 환경이나 시련이 닥치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여러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마음속으로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등을 하나님은 기록부에 다 기록해 두었다. 이런 일들이 너희에게는 아마 무척 흐릿하겠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전혀 흐릿하지 않고 매우 분명하다. 모든 사람의 결말, 모든 사람의 운명 및 앞날과 관련 있으며, 하나님의 모든 심혈이 들어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 쪽에서는 조금도 등한시하지 않고 한 치의 소홀함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을 위해 이런 기록부를 작성하는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른 노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해 두고 있다. 이 기간 하나님을 대하는 너의 태도가 어떠했는지가 바로 너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는 무척 진실하지 않으냐? 지금까지 너희는 하나님이 매우 공의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이 이렇게 하는 것은 아주 적절하지 않으냐? 너희는 하나님에 대해 또 다른 상상을 하고 있느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너희의 결말을 하나님이 정하는 건지, 아니면 사람이 스스로 정하는 건지 말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정하십니다.) 누가 정한다고? (하나님이요.) 여전히 모르는구나! 홍콩의 형제자매들이 먼저 말해 보아라. 누가 정하느냐? (사람이 스스로 정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정한다고? 그 말은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다는 뜻이냐? 한국의 형제자매들이 말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든 행위와 가는 길에 근거해 사람의 결말을 정하십니다.) 객관적인 대답이었다. 너희에게 알려 줘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하나님은 구원 사역을 하는 기간 사람에게 기준을 하나 정해 주었다. 그 기준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사람의 결말을 가늠한다. 네가 하나님의 이 기준에 따라 행한다면 좋은 결말을 얻을 것이다. 반대로 이 기준에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좋은 결말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결말을 누가 정하는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정하는 것이다. 이 말이 맞느냐? (맞습니다.) 왜 이렇게 말할까?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구원 사역을 하며 아름다운 종착지를 예비해 준다. 사람은 하나님이 사역하는 대상으로, 위에서 말한 결말과 종착지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해 주는 것들이다. 사역 대상이 없다면 하나님은 이런 사역을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구원받을 기회가 없어진다. 사람은 구원받는 대상이다. 구원받는 대상이란 게 수동적이긴 하지만 이 대상의 태도가 하나님의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결정된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으면 너는 기준도 모르고 목표도 없다. 기준과 목표가 있더라도 네가 협력하지 않고 실천으로 옮기지 않고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너는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결말은 하나님과도, 사람과도 떨어질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제 대체 누가 결말을 정하는 건지 알았겠지?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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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85)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103)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3)








7/01/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발췌문 285)


지난날, 유대인들은 모두 구약 성경을 보았으므로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예수를 핍박했겠느냐? 패역한 본성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 아니겠느냐?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행하는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예언 속 남자 아기와 같지 않다고 여겼고, 오늘날의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성경에 따라 사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저버린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들의 본질은 다 같은 것 아니겠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라면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느냐? 성령의 역사임이 분명하다면 ‘흐름’이 옳은 것이니 주저 없이 받아들여야지, 자기 기분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네가 하나님을 상대로 식견을 넓히려 하고 여러 가지 의구심을 품는 것은 부질없는 짓 아니겠느냐? 더 이상 성경에서 근거를 찾지 말고, 성령의 역사가 분명하다면 바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므로 하나님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 나에 대한 더 많은 근거를 찾아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설사 성경에서 확실한 증거를 더 많이 찾아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를 완전히 내 앞으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그런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이지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은 결코 네가 나를 알도록 도와주지 못하고, 나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도록 해 주지도 못한다. 성경에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할 것이라는 예언이 기록되었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했기에 그 예언이 누구에게서 이루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그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이 사람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와 예수는 완전히 다르며,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시 예수는 은혜시대에 제자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등등 은혜시대의 말씀만 가르쳤다. 즉, 예수는 은혜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다. 예수는 당시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는 은혜시대의 사역만 했을 뿐, 말세의 사역은 하지 않았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구약 율법을 제정하고 왜 은혜시대의 사역은 하지 않았겠느냐?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미리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겠느냐? 사람이 더 잘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그런 것 아니겠느냐? 여호와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여 정사를 멜 것이라는 예언만 했을 뿐, 은혜시대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하는 각 시대의 사역은 다 일정한 범위가 있다. 그는 해당 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의 사역을 미리 하지는 않는다. 그래야만 각 시대의 대표적인 사역을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그 당시 예수는 말세에 어떤 징조가 나타날지,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인내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고,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하며,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만 말했다.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네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일 아니겠느냐? 네가 성경만을 받쳐 든다면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느냐? 그 어떤 성경 해석가나 설교자가 오늘날의 사역을 미리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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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7)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103)



인류는 비록 타락하였어도 여전히 창조주 권능의 주재하에서 살아간다

사탄이 인류를 타락시킨(직역: 패괴시킨) 몇천 년 동안, 무수히 많은 악행을 저질렀으며, 대대로 사람들을 미혹하며 인간 세상에서 천인공노할 죄를 저질렀다. 사람을 해치고 미혹시키고 하나님께 대항하도록 유혹하며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교란시키고 파괴하는 등의 악행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능 아래의 만물과 생명체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제정한 법칙과 규율을 따르고 있다. 하나님의 권능과 비교할 때, 사탄의 사악한 본성과 그것의 창궐은 추하기 그지없으며, 사람을 역겹게 하고 염증을 일으킨다. 또한 왜소하기 짝이 없고 보잘것없다. 비록 사탄이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가운데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할지라도, 사탄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그 어떤 사람이나 사물도 변화시킬 수 없다. 몇천 년이 지나오면서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내려 준 빛과 공기를 누리고 있다.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친히 불어 준 생기로 숨을 쉬고 있고, 하나님이 만든 꽃과 새, 물고기와 곤충들을 즐기며, 하나님이 공급해 준 만물을 만끽하고 있다. 낮과 밤은 여전히 끊임없이 교체되고, 사계절 역시 변함없이 순환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는 올겨울에 떠나가서 내년 봄에 다시 돌아온다. 물속의 물고기는 강과 호수인 그들의 집을 떠나 본 적이 없다. 땅 위의 매미는 여름날 마음껏 노래를 부른다. 풀 속의 귀뚜라미들은 가을날 가을바람을 따라 노래한다. 기러기는 무리를 이루고 송골매는 홀로 고독하게 난다. 사자 무리는 사냥하며 살아가고, 사슴들은 꽃과 풀밭을 떠나지 않는다. … 만물 가운데의 각종 생명체들은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 다시 가며 찰나 속에서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그들 각자의 본능과 생존 법칙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는 자양분 아래 생존한다. 그 누구도 그들의 본능을 바꿀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그들의 생존 법칙을 파괴할 수 없다. 만물 가운데서 살아가는 인류는 비록 사탄에 의해 타락되고 미혹되었지만, 하나님이 만든 물과 공기와 만물을 떠날 수 없다.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만든 이 공간 속에서 번성하며 살아간다. 인류의 본능은 변화가 없으며, 인류는 여전히 두 눈으로 바라보고, 두 귀로 경청하고, 머리로 생각하며, 마음으로 깨닫고, 두 다리와 두 발로 걸으며, 두 손으로 일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본능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가 하나님과 협력하는 기관은 변하지 않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할 수 있는 기관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 심령의 필요는 변하지 않았으며, 인류가 뿌리를 찾아 돌아가려는 소망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가 창조주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소원은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능 아래에 살아가면서 사탄의 피비린내 나는 학대를 견디고 있는 인류의 현주소다. 비록 사탄의 엄청난 유린을 당한 인류는 더 이상 태초에 창조한 아담과 하와가 아니고, 지식과 상상, 고정 관념 등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들이 가득하고, 사탄의 타락 성품이 가득한 인류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눈에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만든 존재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의 주재, 섭리하에 있고, 하나님이 정한 궤적 가운데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기에 사탄에 의해 타락된 인류는 단지 외관적으로 더럽고 굶주리고 반응도 느리고 기억력도 감퇴되고 나이가 조금 많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모든 기능과 본능은 오히려 무결하게 완전하다. 이런 인류가 바로 하나님이 구원하고자 하는 인류이다. 이런 인류는 창조주의 부름을 듣고 창조주의 음성을 듣기만 하면 곧 일어나 음성의 근원을 찾아 달려간다. 이런 인류는 창조주의 그림자를 보기만 하면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창조주를 위해 헌신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친다. 인류의 마음과 영이 창조주의 마음의 소리를 깨달을 때, 인류는 사탄을 버리고 창조주의 곁으로 온다. 인류가 완전히 몸의 더러움을 씻어 내고 창조주가 다시 공급해 주는 자양분을 얻을 때, 인류의 기억은 회복된다. 이때의 인류는 진정으로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온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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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발췌문 43)

매일의 하나님 말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발췌문 97)

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발췌문 10)